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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한겨레] 일제, 제암리 주민 30명 교회 가둬놓고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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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4-24 10:09 조회9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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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한겨레] 일제, 제암리 주민 30명 교회 가둬놓고 학살 

등록 :2019-04-19 07:18수정 :2019-04-19 07:22

강연 있다며 집집마다 소집명령
예배당 출입구 모두 막고 불질러

 1919년 4월15일 경성/엄지원 기자


“완전무결하게 황폐한 모습이었다.” 지난 4월 초순부터 경기도 수원 지역을 방문한 한 미국인의 전언이다. 해당 지역에서 뒤늦게 만세운동이 격발된 이후 일본 군인들이 조선의 무고한 양민들을 잔혹무도하게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은 풍문으로만 알려져왔다. 다행히 최근 구라파와 미국의 선교사들이 현지를 방문하여 잇따라 소식을 전해오는 고로 본지는 이를 종합하여 독자들에게 전한다.

수원 지역에서 가장 잔혹한 학살이 벌어진 것은 지난 15일의 일이다. 이날 낮 수원 향남면 제암리의 주민들은 일본 헌병대로부터 “강연이 있을 테니 20살을 넘긴 남자들은 모두 교회에 집합하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일본군은 40가구에 지나지 않는 이 작은 부락을 가가호호 방문하며 소집 명령을 듣지 못한 이들까지 불러냈다고 한다. 교회당에 모인 30명 남짓한 남자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웅성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건물은 시커먼 연기에 휩싸였다. 그제야 그들은 일본군이 교회의 출입구를 모두 봉쇄한 채 불을 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은 동풍이 강하게 불어 삽시간에 예배당이 전소되었다. 경악에 빠진 이들은 탈출을 기도하다가 칼에 찔리거나 총에 맞아 죽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교회당으로 들어갔다가 죽게 된 한 남자가 아들을 창밖으로 탈출시키며 헌병대에 애원하였다. “이 어린것만은 제발 살려주십시오.” 인면수심의 헌병대는 어린아이를 칼로 내리쳐 죽였다. 현장 주변에는 두명의 여자도 총칼에 희생당한 채 쓰러져 있었다. 남편이 교회당에 불려간 뒤 총소리가 나자 놀라서 뒤쫓아왔다가 살해당한 여자들이었다. 노경태라는 한 남자가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목숨을 건졌으나 그를 제외하곤 교회당으로 향했던 남자들이 영문도 알지 못한 채 모두 살해당하였다.


“30리 밖까지 시체 타는 악취” 강한 동풍 탓 삽시간에 전소

영문도 모를 아이까지 죽여 주검엔 총검 찔러 「확인사살」

헌병대는 교회뿐 아니라 온 마을에 일일이 불을 질렀다. “마을 전체를 태우는 연기와 재가 시체를 태우는 악취와 함께 30리 밖 오산까지 퍼져갔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이 부대를 이끌던 일본인 아리타 도시오 중위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주검들을 창자가 나오도록 총검으로 일일이 찔러보아 ‘확인사살’하였다. 교회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2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고 하나 정확한 집계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참사 뒤 현장을 찾았던 한 미국인은 당시의 참상을 이렇게 전하였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짚단이나 멍석을 깔고 앉아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산 밑에다 조그마한 피난처를 만들어놓고 그 속에 앉아 폐허로 바뀌어버린 그들의 집을 멍청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말을 잃어버린 채 왜 이러한 심판이 내려졌는지, 그리고 왜 자신들은 과부가 되고 어린이들을 고아로 만들게 되었는지를 곰곰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찾아온 재난으로 인해 무력감과 절망감에 싸여 있었다.”  


비극은 제암리에 그치지 않았다. 일본은 이번 만세운동의 배후를 조선 내 기독교와 천도교 세력으로 보고 있다. 실로 제암리는 비록 작은 부락이나, 교회당이 있을 정도로 농촌으로서는 개화된 곳이었다. 그리하여 일본 당국은 기독교인을 탄압하면 이 만세운동의 높은 기세를 꺾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수원 화수리 수사주재소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지던 중 화수리 주민들에게 일본인 순사 한명이 죽임을 당한 일도 일본 당국에 명분을 주었다.

화수리선 순사 죽음 명분 새벽녘 온 마을 태워

“조선인 전부를 죽일 셈인가” 영국 등 잇단 비난


순사를 죽인 대가로 ‘꽃과 나무’의 마을이었던 화수리 역시 잿더미로 변했다. 40여가구 가운데 절반은 전소되었다. 헌병대는 11일 사람들이 잠든 새벽녘을 틈타 횃불을 들고 가구마다 불을 질렀다. 잠이 덜 깬 채 뛰쳐나온 주민들에게 몽둥이와 총칼이 뒤따랐다. 죽지 않은 주민들은 감옥으로 끌려갔다. 이처럼 일본군이 휩쓸고 간 지역마다 동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사신이 휩쓸고 간 폐허에 남은 것은 공포에 질린 부녀자들뿐이었다. 전 국토에 걸쳐 그 살육이 얼마나 심각하였던지 일본에 우호적인 영국 측에서조차 “일본은 조선인 2500만을 모두 죽일 생각인가”라고 비난하였다고 한다.  

일본 당국은 이처럼 잔학한 만행을 일개 소대의 돌발적 행동으로 눙치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확산되는 만세운동에 놀라 조선 내 병력을 대대적으로 증파한 것은 조선총독부와 일본 내각이다. “경무기관은 사찰 및 검거에 극력 활동하여 화근을 소멸하라”고 지시한 것도 하세가와 요시미치 총독이다.

조용히 길을 걷다 개머리판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여학생들, 쇠갈고리에 찍혀 살해당한 조선인, 거리에서 등에 관통상을 입은 남자, 찢기고 피투성이가 된 옷을 입고 형무소에 끌려가는 수십명의 양민들. 눈과 귀 있는 자 가운데 지난 1개월 넘는 기간 동안 조선 땅에서 벌어진 무수한 폭력과 만행을 모르는 이가 없다. 침묵해온 서구인들도 마침내 일본의 조선 통치 방식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3월 만세운동이 발발한 뒤 이러한 일본 군경의 가혹한 고문과 학대에 대해 문제 제기가 누차 있었음에도 ‘비폭력운동’에 대한 무력 대응의 수위를 높여온 만큼 하세가와 총독은 책임론을 비켜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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